[도표] 한국사의 쟁점들에 대한 각국 학계의 시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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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한 강단사학계 | 남한 민족사학계 | 북한학계 | 중국학계 | 일본학계 | |||||||
홍산문화와 요하문명 귀속성 여부 | 중국사로 규정 | 동이족 문명으로 봄 | 언급 없음(《조선단대사》) | 중화 황제족의 문명으로 봄 | 중국의 견해와 한국 민족사학계의 견해 소개(《위키백과》 '홍산문화') | ||||||
황제의 귀속성 여부 | 황제를 중화민족의 시조로 봄 | 황제를 동이족으로 봄 | 언급 없음(《조선단대사》) | 황제를 중화민족의 시초로 봄 | 언급 없음 | ||||||
단군 실존 여부 | 신화로 봄 | 실존 인물로 봄 | 실존 인물로 봄 | 신화로 봄 | 신화로 봄(일제 강점기) | ||||||
고조선의 건국 시기 | 신화로 봄 | 《동국통감》의 서기 2333년설 인정 | 서기 30세기경으로 봄 | 신화로 봄 | 신화로 봄(일제강점기) | ||||||
고조선의 강역 | 대동강 유역의 소국으로 주장하다가 요녕성 요하에서 대동강 유역으로 이동했다는 이동설 주장 | 하북성 난하까지 고조선 강역으로 봄 | 서기전 6~4세기는 하북성 난하, 서기전 3~2세기는 요녕성 대릉하까지로 봄 | 대동강 유역으로 봄 | 대동강 유역으로 봄 | ||||||
기자조선 실제 여부 | 기자조선에 대한 입장 정리 안 되어 있음 | 기자를 단군의 후계자로 보지 않음 | 기자조선 부인 | - 기자조선 인정 - 지금의 평양 일대를 중심으로 한 소국이라는 일반적 인식 팽배 | 일제강점기 초기에 사실로 인정하다가 중국과 한국 단절시키기 위해 부정 | ||||||
위만조선 귀속성 여부 | 위만조선부터 역사적 사실로 봄 | 위만을 단군조선의 계승국으로 보는 견해와 부정하는 견해 병존 | 위만을 연나라 사람으로 봐서 '만조선'이라 지칭 | 황제를 중화민족의 시조로 봄 | 황제를 중화민족의 시조로 봄 | ||||||
《규원사화》와 《환단고기》에 대한 시각 | 위서로 봄 | 《규원사화》는 진서로 보고 《환단고기》는 진서로 보는 견해와 더 연구가 필요하다는 견해로 나뉨 | 《규원사화》는 진서로 인정. 《환단고기》는 《환단고기》 대신 《태백일사》·《단군세기》 등 개별사료들을 사실로 인정하고 인용 | 보편적 견해 없음 | 보편적 견해 없음 | ||||||
낙랑군의 위치 | 평양설을 주장하다가 평양에서 요동으로 이동했다는 교치설 주장 | - 하북성 노룡현에 낙랑군 조선현이 있었다고 봄 - 낙랑군 교치설 부정 | 요동반도의 요하 하류 지역으로 봄 | 평양으로 봄 | 평양으로 봄(평양에서 요동으로 이동했다는 교치설 처음 주장) | ||||||
고대부여와 후부여 | - 후부여만 인정 - 서기전 2세기경부터 서기 494년까지 북만주 지역에 존재했던 예맥족의 국가로 봄 | 고구려와 백제가 부여에서 나왔다고 봄 | 고대부여는 서기전 15세기 중엽부터 서기전 219년까지, 후부여는 서기전 2세기 초부터 서기 494년까지 존재했던 나라로 봄 | 부여를 중국사로 봄 | 예족濊族이 세운 국가로 봄 | ||||||
고구려의 건국연대 | - 《삼국사기》 초기 기록 불신론에 따라 2세기 태조왕 때 건국되었다고 주장 - 2005년부터 활동한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한국측 보고서는 3세기 서천왕 때 건국되었다고 서술. 또한 4세기 후반에 고대국가 체제를 완성했다고 주장 | 서기전 2세기경부터 있었다고 봄(고구려사 900년) | 고조선의 후국으로 서기전 15세기경부터 존재(고구려 전사 前史)하다가 서기전 277년에 고주몽에 의해 건국되었다고 봄 | 고구려를 고구려현에서 출발한 중국사로 봄 | 《삼국사기》 초기기록 불신론에 따라 2세기 태조왕 이후에 건국되었다고 주장 | ||||||
초기 고구려의 도읍지 위치 | 지금의 요녕성 환인이나 길림성 집안으로 봄 | 환인이나 집안으로 보는 견해와 하북성 등지로 보는 견해 병존 | 고구려 건국(서기 277년) 당시는 지금의 길림성과 평안도, 함경도 지역으로 봄 | 환인과 집안으로 봄 | 환인과 집안으로 봄 | ||||||
고구려 태조왕이 공격한 한나라 요동군 서안평의 위치 | 압록강 대안의 단동으로 봄 | 《요사》 등에 근거해 지금의 내몽골 자치주 파림좌기로 보는 견해 존재 | - 요동군 양평(현 조양)현 동쪽 60리 지점으로 봄 - 태조왕이 쌓은 요서 10성의 위치에 대해 혼하, 요하, 대릉하로 보는 견해 병존 | 압록강 대안 단동으로 봄 | 압록강 대안 단동으로 봄 | ||||||
백제의 건국연대 | - 《삼국사기》 초기 기록 불신론에 따라 3세기 고이왕 때 건국되었다고 봄 - 2005년부터 활동한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한국 측 보고서는 4세기 근초고왕 때 건국되었다고 서술 | - 서기전 18년경 건국되었다는 《삼국사기》의 기록 신빙 - 대륙백제, 반도백제, 해양백제(일본)가 존재했다고 봄 | 서기전 3세기 중엽 백제 소국이 성립되었다가 서기전 1세기 말엽 마한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봉건국가로 발전(《조선단대사 8, 백제사 1,2》) | 근초고왕 때 건국했다고 봄 | 남한 강단사학과 유사 | ||||||
신라의 건국연대 | - 《삼국사기》 초기 기록 불신론에 따라 4세기 내물왕 때 건국되었다고 봄 - 2005년부터 활동한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한국측 보고서는 5세기 눌지왕 때 건국되었다고 서술 | - 《삼국사기》에 따라 서기전 1세기에 건국했다고 봄 - 대륙에서 시작해 일부는 그대로 대륙에 남고 일부는 이동했던 것으로 보는 견해 존재 | 서기전 1세기 초중엽에 사로국이 형성되었다가 서기 1세기 초중엽에 봉건국가 성립되었다고 봄 | | 남한 강단사학과 유사 | ||||||
옥저의 위치 | 동옥저는 함흥 중심, 북옥저는 두만강 유역에 있었다고 봄 | 《명사》 지리지에 근거해 지금의 심양 부근으로 보는 견해 존재 | 옥저는 압록강 북쪽, 북옥저는 지금의 흑룡강성과 연해주 흥개호 중간 남북에 있었다고 봄 | | 남한 강단사학과 유사 | ||||||
읍루의 위치 | 지금의 연해주 지방에서 흑룡강 하류, 또는 송화강 유역에 걸쳐 있었다고 봄 | 《일통지》에 근거해 지금의 심양 북쪽 철령부터 백두산 북쪽까지 걸쳐 있었다고 보는 견해 존재 | 흥개호 북쪽에 있었다고 봄 | | 남한 강단사학과 유사 | ||||||
예의 위치 | 지금의 강원도 강릉 지방을 중심으로 한 소국이었다고 봄 | 《삼국지》의 "조선의 동쪽"에 있었다는 기록을 볼 때 강원도로 비정할 수 없다는 견해 존재 | 예의 소국들이 요동반도 동남쪽에 있었다고 봄 | | 남한 강단사학과 유사 | ||||||
삼한의 위치 | 한반도 남부 일대로 봄 | 《삼국지》와 《후한지》의 "사방 4,000리"라는 기록을 볼 대 한반도 남부에 국한시킬 수 없다는 견해 존재 | 한반도 전체를 삼한으로 보다가(《고조선연구》(리지린, 1961)》 경기도 남쪽 전체로 봄(《조선단대사 2, 진국 가야편(2011)》) | | 남한 강단사학과 유사 | ||||||
최씨낙랑국의 위치 | 최씨낙랑국을 한나라에서 설치한 낙랑군으로 봄 | 평양을 중심으로 평안도 일대에 한나라 낙랑군과 다른 최씨 낙랑국이 존재했다고 봄 | - 만(위만)조선이 무너진 후 평양을 중심으로 평안도 및 함경도 일부에 고조선 유민들이 세운 나라가 최씩낙랑국이라고 봄 - 평양 일대의 낙랑 유적들을 한사군 낙랑군의 유적이 아니라 고조선 후예 국가인 낙랑국의 유적이라고 봄 | | 남한 강단사학과 유사 | ||||||
임나일본부설 | - 총론으로는 임나일본부설을 폐기했다고 말하지만 왜가 가야에 외교기관, 교역기관 등을 설치했다는 '임나 = 가야'설 유지 - 북한학계의 일본 열도 분국설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 | - '임나 = 가야'설 부정 - 임나의 위치를 대마도, 규슈 등지로 비정하다가 북한학계의 오카야마 기비설 수용하는 추세 | - 임나를 가야가 일본에 세운 분국으로 봄 - 광개토대왕비에 등장하는 왜가 야마토왜가 아니라 규슈의 가야계 분국으로 봄 | | 야마토왜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과 왜가 가야에 외교기관, 교역기관 등을 설치했다고 인식 | ||||||
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의 위치 | 지금의 평양의 위치라고 봄 | 지금의 요녕성 요양으로 비정하는 견해 존재 | 지금의 평양이라 봄 | 지금의 평양이라 봄 | 지금의 평양이라 봄 | ||||||
칠지도에 관련된 백제와 왜의 상하관계 | 황제국 백제의 왕이 제후국인 왜왕에게 하사한 칼로 봄 | 황제국 백제의 왕이 제후국인 왜왕에게 하사한 칼로 봄 | 황제국 백제의 왕이 제후국인 왜왕에게 하사한 칼로 봄 | | - 제후국 백제의 왕이 상국 왜왕에게 진상한 칼로 봄 - 교토대학의 우에다 마사아키 교수 등 일부 학자들은 백제왕이 왜왕에게 하사한 칼로 봄 | ||||||
통일신라의 강역 | 지금의 임진강에서 함경남도 덕원을 잇는 지역으로 봄 | 심양~요양까지로 보는 견해 대두 | 지금의 평양 남쪽에서 함경도 원산 부근까지로 봄 | 남한 강단사학과 유사 | 남한 강단사학과 유사 | ||||||
고려의 북방 강역 | - 고려의 건국 초 영역을 청천강과 그 지류인 박천강까지로 봄 - 국사 교과서는 압록강 서쪽에서 함경남도까지 사선으로 고려 강역 설명 | 《고려사》·《명사》에 근거해 요녕성 심양 남족 진상둔지(찰령)에서 흑룡강성 영안(공험진)까지로 봄 | 윤관이 두만강 북쪽 공험진 선춘령까지 확장했다고 봄 | 철령위가 심양 부근에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함경도에도 있었다고 모순된 서술 | 남한 강단사학과 유사 | ||||||
살수대첩이 벌어진 살수의 위치 | 지금의 청천강으로 봄 | 요동반도에 있던 강으로 비정 | 요동반도 대양하의 지류 소자하로 봄 | 지금의 청천강으로 봄 | 남한 강단사학과 유사 | ||||||
고려의 북방 강역 | 평안북도 선천 서북으로 비정 | 중국 흑룡강성 영안시 합이파령에 동주가 있다가 요동반도로 이정했음 | 중국 흑룡강성 영안시 합이파령에 동주가 있다가 요동반도로 이정했음 | 평안북도 철산 부근으로 비정 | 남한 강단사학과 유사 | ||||||
조선의 북방 강역 | 세종 때 4군 6진 개척으로 압록강~두만강까지 강역 확대했다고 봄 | 고려의 북방 강역을 이어받아 요녕성 심양 남쪽 진상 둔진의 철령에서 영안 부근의 공험진까지라고 봄 | 압록강 북쪽의 11처 여진땅을 조선이 차지한 것으로 설명(《조선단대사 19, 리조사 4,5)》 | | 남한 강단사학과 유사 |
※ 《이덕일의 한국통사: 선사시대-대한제국 편》(다산초당, 2018) 부록에서 발췌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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